베트남어의
원형은 현재의 베트남 북부지역인 홍강유역에서
형성된 후, 북부인들이 베트남 중부지역에 위치했던 인도문명의 참파왕국을 격파한 후 16세기
후반에 당시 크메르계 민족이 지배하던
남부 메콩델타 지역까지 남진하는
과정을 통하여 오늘날과 같은 지리적 분포를 이루게
되었다.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약 10 세기에 걸친 중국 통치기간
동안 중국어는
베트남 지배층의 언어가 되었으며 행정에 한문이 사용된
관계로 모든 영역에 걸처 한자계
어휘 Hán Việt 가
대량으로 베트남어에 유입되었다. 11세기 무렵에는 한자를
사용하여 베트남어의 음을 적는 쯔놈문자 chữ nôm
가 만들어져 베트남의
지식층 사이에 통용되기도 하였으나, 한자를 먼저 알아야하는
딜레마와 문자기능의 불완전함 등의 한계로 인하여 일반대중의
문자체계로 자리잡지 못하고 18세기 이후 쇠퇴하였다.
꾸옥응으
quốc ngữ 라
불리는 현재와 같은 베트남어 표기계통이 만들어진 것은
17세기로 당시 선교 통상의 목적으로 베트남에 머물던 포르트갈
등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문자체계를 이용하여 베트남어
발음을
표기하는 과정에서이다. 그럼에도 꾸옥응으는 오랜
동안 베트남에서 제한적으로만 보급되다가 약 3 세기의
세월이 지난 이후에야 베트남에서 국민적 문자체계로 채택된다.
1858년
다낭에 상륙한
프랑스 해군은 베트남을 점령하고 프랑스
식민통치를 시작하는데,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진 프랑스 지배는 베트남의 언어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등장함에 따라 과거제도가 폐지되는 등 한자의
영향력이 퇴조하는 대신, 베트남 엘리트층이 프랑스어를
구사 하게되고 불어어휘
및 프랑스식 표현이 베트남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프랑스
통치기간 중 베트남은 전통적 봉건사회에서 근대적 사회로
넘어가는 문물 제도의 변혁을 겪게되며, 새로운 사회환경은
일반대중이 사용할 수 있는 간편한 문자체계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꾸옥응으가
대안으로 제시되어 사회전반의 지지를 확보하게 되었으며
신분제 철폐로 대중교육이 가능해진 사회여건은 새로운
문자체계의 신속한 보급을 가능하게 하였다.
꾸옥응으는
20세기 초반에 이미 베트남의 모든 계층에 폭 넓은 보급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종주국의 통치언어인 프랑스어가 행정
교육의 공식언어로
강제됨에 따라 보조적인 문자 체계로밖에 인정받지 못하다가,
프랑스가 베트남에서 통치력을 상실하는 1950년대
후반
이후에야 꾸옥응으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문자로 자리메김한다. 베트남 전역에
걸친 꾸옥응으 문자의 보급에도 불구하고 교통 통신 수단이 빈약했던
당시의 여건은 베트남 남북 지역의 베트남어 사이에 발음
및 어휘에 있어 큰 차이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후 20년간
계속된 남북 베트남의 분단으로 인하여 이와 같은 언어적
차이는 줄어들지 않았다. 1975년
공산화통일에
따른 베트남 통합 이후 행정 교육을 통하여 북부 베트남어를
근간으로한 표준어
보급이
시도되었으며, 전국적 네트웍을 가진 신문 방송매체의 등장은
베트남어의 지역간 언어통합에 크게 공헌하였다.
베트남어의
지역에 따른 발음 및 어휘 (북부:통킨어, 중부:안남어,
남부:코친차이나어) 의 차이는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으나
상호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베트남인의
높은 교육열 및 베트남어 표음체계의 합리성으로 인하여
베트남은 동남아에서 문자해득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의 하나이며, 라틴 알파벳을 사용하므로 영어권
주도의 현대 정보통신 기술의 적용이 용이한
등의 잇점을 누리고 있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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